우리는 근원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

NO. 45   작성자 ricerice11   조회 609 40달 전, 2016-08-21 11:28:07
URL http://www.photoschool.kr/board/view?m=23&s=45 언론보도
김명철과 박영무. 이 두 사람은 세상의 그늘 속에 자신의 존재를 묻고 살아온 사람들과 그들의 소외된 삶을 찍어온 사진작가들이다. 자신이 찍은 사진 속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오랫동안 익명의 존재인 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1978년에 세상 밖으로 사라진 김명철은 24년이 흐른 1992년에 열린 첫 전시를 통해서 비로소 그가 생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린 사진가였고, 1945년에 태어난 박영무는 단 한 차례의 전시도 하지 못한 채 무영의 세월을 낚다가 2003년에 처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사진을 선보인 사진가다.

두 사람 이름으로 함께 낸 사진집 <시간의 풍경>은 2004년 4월에 열린 <시간의 풍경-Time in Camera>라는 전시회의 결과물이다. 사진집은 김명철의 사진으로 묶여진 '아름다운 삶'과 박영무의 사진으로 묶여진 '머무를 수 없는 순간들',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시간의 단층을 들여다 보다

새떼가 날아간다. 저 새들이 날아가는 것은 하늘이라는 공간인가, 여태 겪어 보지 못한 미지의 시간 속인가. 새들은 어떻게 알았을까. 거기에 자신의 존재를 품어줄 공간이 있다는 것을, 자신이 더듬어 올라갈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새는 너무 늦지도 너무 빠르지도 않게 하늘이라는 공간 속으로 날아가 버렸다. 한 마리의 시간, 두 마리의 시간, 그리고 수십 마리의 새들…. 나는 무심코 새총을 쏘아 내 곁에 날아 앉으려던 시간이라는 새들을 멀리 쫓아버리고 말았다.

그때 새들이 황급히 떨어뜨리고 간 시간들은 지상의 어디에 가야 찾을 수 있나. 그들이 삶을 호흡하고 삶을 저울질하던 공간은 어디에 멈춰 서서 다른 존재들을 기다리고 있나. 모든 흘러가는 것들, 날아가는 것들 속에서는 존재의 아득한 흐느낌이 들려온다.

내가 덧없음 속에서 배운 것은 존재에 대한 허무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더욱 더 강력한 무장이었다. 시간의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고 좀 더 확실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시간이라는 덫에 걸린 존재의 운명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의자에 앉은 형제처럼 보이는 두 소년. 렌즈는 두 소년을 응시하고 두 소년은 사진기를 응시한다.

기억도 나지 않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던 순간은 얼마나 황홀했을까. 신기한 것은 왜 그리 많았던지 모른다. 유년시절의 세상은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새로운 갓난아기였다. 들여다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들쑤시고 싶은 호기심이 무럭무럭 자라던 때였다.

시간의 단층 속을 절개해 보면 층마다 다른 출토물이 나온다. 가장 아래층에는 유년의 화석이 잠들어 있다. 시간이라는 액체는 어디서 흘러와서 고체가 되어 이렇게 무늬와 결을 남기고 떠나는가.

살아오는 동안 머무르고 싶을 만큼 벅찼던 시간, 아쉬웠던 순간은 얼마나 많았던가. 할 수 있다면 그 공간 속 한 점 먼지로라도, 한 등 불빛으로라도 싶었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바람이었다.

모든 시간은 이별을 잉태하고 있다. 시간의 눈망울을 열심히 들여다보지만 이별의 순간이 오기까지 기미를 눈치 채지 못한다.

호주머니 속으로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한 남자가 걸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는 조금 전 누군가와 악수로써 이별을 고했는지 모르고, 그의 마음이 아닌 두 손이 그 이별을 대신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남자는 점점 조그마해져서 길의 끝에 가면 한 개의 점으로 남을 것이다. 저렇게 떠나가면 자신의 존재 밖으로 벗어날 수 있을까.

선 채로 멍청하게 시간의 뒷꼭지를 바라보다

한 남자가 걸어간다. 존재보다 그림자가 훨씬 길다. 본문보다 지문이 더 긴 문장을 읽고 있을 때 정신은 나른해지고 만다. 이제 머지않아 저 남자의 영혼도 곧 기지개를 켜고 말 것이다.

남자는 그림자를 질질 끌며 걸어가고, 시간은 남자를 막무가내로 끌고 간다. 무슨 인기척이라도 들은 것일까. 문득 시간이 뒤돌아본다.

내 지난 삶의 자취는 어디로 갔을까. 시간은 뼈아픈 후회에 잠겨서 걸어가지만, 남자는 무심하게 그냥 걸어갈 뿐이다.
연탄은 까맣다. 그리고 모든 색의 어머니인 검정색 속에는 아직 분해 되지 않은 추억이 있다. 19공탄의 검정색 속에는 완전연소되지 않았던 내 청춘도 들어 있다.

소내장 같이 시뻘건 피가 묻어 있는, 버릴 수도 쓸어 담을 수도 없는 삶의 부산물들. 삶의 온기라곤 하나도 없는 쓸쓸한 날, 문득 선지 해장국에 막걸리 한 사발 쭉 들이키고 싶을 때, 내 영혼 속에서 아직도 연소되지 못한 이산화탄소 냄새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문간에 서 있는 저 연탄집 남자는 지금 기다림을 연소시키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남매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수줍게 웃고 있다. 수줍다는 것은 아직 뻔뻔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에 물들지 않은 아이의 미소. 천진스럽게 피어난 꽃이 난만하게 웃고 있다. 한때는 나도 저런 미소의 주인이었다.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삶의 따스함이 연탄불처럼 지속적으로 타올랐던 시절. 그때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와 버렸다. 평수 넓은 아파트와 내부 공간이 넓은 자동차. 어린 날 우리가 품었던 꿈의 모습이 이런 것이었던 것일까.

순수하다는 것, 물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은 아직 파괴되지 않았던 우리네 삶의 원형이다. 고향 풍경은 입을 열어 말한다. 네 원형을 잊지 말라고.

변두리 삶에 따뜻한 군불을 지피는 흑백 사진들
 
 
 
  사진작가 김명철·박영무와 글쓴이 진동선  
 
 
김명철 평양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에 입문했으며, 일제시대와 해방 후까지 사진을 계속했다. 임해촬영대회를 개최하는 등, 인천지역 사단발전에 기여하기도 했다. 2002년 인천 신세계백화점 갤러리에서 생전 첫 전시를 가졌으며, 유작사진집<아름다운 소풍>을 상재하였다.

박영무 개성에서 태어나 1960년대 중반부터 사진에 입문했으며, 당시 명망높았던 현대사진연구회에 가입, 마지막 회원으로서 클럽의 해체를 지켜보았다.1970년대 중반 클럽의 해체로 오랫동안 사진에서 멀어졌다가 90년대 후반 다시 사진의 길로 들어섰다. 2003년 <사진과 역사적 기억전>을 통해서 생전 처음으로 사진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진동선 위스콘신대 예술학과에서 미술사와 순수사진을 전공. 뉴욕주립대 예술대학원에서 사진비평을 전공. 2004년 현재 현대사진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명철이 그의 렌즈를 통해 붙잡은 것은 6.25에서 1960년대 후반까지 인천과 인천 근교의 풍경 속에 담긴 소박한 삶의 포즈들이다.

박영무는 그의 카메라로 1960, 70년대 막 시작된 산업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그 이면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냈다.

사진이라는 어미닭은 과거라는 알을 부화시켜 세상에 내보낸다. 그 알 속에는 과거의 DNA가 들어 있다. 김명철과 박영무, 이 두 사람의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아련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그들이 찍은 흑백 사진들은 변두리 삶에 따뜻한 군불을 지피고 내 마음 속에도 추억의 군불을 지핀다. 사진에 문외한인 내가 점점 사진에 흥미를 붙여간다. 사진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시간의 소중함을 안다는 것과 동일하다.

시간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만큼 나이 들었다는 얘기일 테니까.

05.09.16 17:43

출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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